용해인 의원, 대통령기록물 보호 기간 악용 우려 지적…시민사회 “내란 책임 투명하게 밝혀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내란죄로 파면된 이후, 그의 재임 중 기록물 관리 문제가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해인 의원은 지난 4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의 증거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며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일명 ‘내란 증거 은폐 방지법’으로 불린다.
현행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이 퇴임 또는 파면 시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최대 30년까지 보호 기간을 설정해 국민과 국회 등의 열람 요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 기간 지정에 대해 대통령의 자의적 결정이 가능하며, 대통령 파면 시에도 명확한 지정 권한자가 없어 권한대행이 이를 결정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악용 가능성이 지적된다.
용해인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으로 보호 기간을 지정하게 될 경우, 123 내란과 관련된 핵심 자료가 은폐될 수 있다”며, “이는 비상계엄 해제 이후 계엄 문건에 서명까지 한 내란 부역자가 증거를 봉인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정보공개청구 소송이 진행 중인 대통령기록물에 대해 대통령기록관으로의 이관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된 자료가 소송 중 이관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10년 넘게 묻힌 전례를 반영한 것이다.
용 의원은 “기록물이 이관되면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정보공개가 완료된 후에야 이관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파면 시 이관 조치 기간의 유연성 필요
현행법은 대통령 파면 시 이관 조치를 차기 대통령 임기 시작 전까지 완료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 기간이 60일로 지나치게 짧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용 의원은 “통상 1년에 걸리는 기록물 이관 준비를 60일 내에 끝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일 경우 대통령기록관장이 주도해 이관을 준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 반응: “내란 책임 투명하게 밝혀야”
시민사회단체들도 대통령기록물 공개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헌법질서를 파괴한 내란 행위의 전모를 국민이 알아야 한다”며 “대통령기록물은 역사의 증거이며, 이관을 이유로 비공개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도 관련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통해 “대통령기록물 보호라는 명목 하에 역사적 진실이 가려지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유사 사례: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대통령 기록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세월호 참사 당일의 대통령 보고 시점 등 관련 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어 정보공개청구 소송이 장기화된 바 있다. 당시 소송은 자료 이관 이후 처음부터 다시 진행돼 10년 가까이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정보공개 회피 수단으로 대통령기록물법이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지목된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과 관련해 주요 기록들이 보호 기간 지정으로 인해 비공개 처리되면서 논란이 일었던 전례도 있다.
야당 “사실상 증거 은폐 시도”…여당은 침묵
야당은 일제히 대통령기록물 관리 방식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했다. 정의당은 “헌정 질서를 파괴한 행위의 진상을 가릴 기록물이 봉인된다면, 이는 국민의 알 권리 침해를 넘어 헌법정신 훼손”이라며 “신속한 입법으로 공백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여당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일부 여당 인사들은 “기록물 보호는 전직 대통령의 권리이기도 하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기록물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국정의 흐름, 통치자의 의도, 역사적 판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권력의 거울’이다. 그 거울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봉인된다면, 국민은 권력을 심판할 수단을 잃게 된다. 용해인 의원의 개정안은 대통령기록물법의 본래 목적, 즉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라는 헌법정신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