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의 고장’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더 이상 명태가 잡히지 않는 이 바닷가에선 지난 10월, 또다시 명태축제가 열렸다. “명태의 기운을 담아 행운을 주는 축제”를 표방하며 25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지역축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홍보와 달리, 정작 지역의 문화와 기억을 소외시킨 체험 중심의 소비형 축제로 굳어지고 있다.
25년 명맥… 그러나 기억과 문화는 실종
고성문화재단과 언론이 전한 이번 명태축제의 풍경은 화려했다. 명태할복체험, 명태키링 만들기, 어선버스 체험, 명인과 함께하는 요리쇼, 포토존, 푸드트럭, 디제잉 공연, 트로트 콘서트까지. 200여 개가 넘는 부스가 운영됐고, ‘오감만족’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등장했다.
그러나 명태와 함께했던 어민들의 삶, 명태잡이 문화와 어로요, 명태가 고성에서 사라진 이유는 대부분 단발성 이벤트에 불과했다. 무형문화재인 ‘고성 어로요’는 한 차례 공연으로 끝났고, 명태 문화유산 전시는 생태 수족관과 사진전 수준에 머물렀다.
게다가 보도자료에 따르면 명태요리 체험은 군인 장병과 외지인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지역 어민이나 고령 세대의 ‘증언’은 들을 수 없었다.
지역축제의 구조적 병폐… 고성도 예외 아니다
한국 지방축제의 문제는 고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주토픽>은 “정체성 없는 축제는 시민과의 소통 단절을 의미한다”고 지적하며, 관주도·전시행정·주민참여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다 . 고재열 여행감독은 “요즘 축제는 기원도, 신명도, 전복도 없다”며, 오늘날의 지역축제가 공동체의 자율적 축제가 아니라 관제된 이벤트의 반복이라고 비판했다 .
<중부매일> 칼럼도 “축제는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한다. 주제를 벗어난 단순 공연 중심은 축제가 아니라 소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단 몇 분을 위한 가수 무대에 예산의 30% 이상을 소모하는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
“명태를 기념한다면, 명태로 살았던 사람들을 먼저 기억하라”
명태는 단순한 어종이 아니다. 고성군의 어민들에게는 삶이었고, 고장의 생계였고, 문화였다. 명태가 사라진 지금, 명태를 앞세운 축제를 계속한다면 그 축제는 명태의 기억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현장 중심의 문화복원형 콘텐츠, 기억 기반의 전시와 구술 프로그램,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는 설계 구조 없이는 이 축제는 명태의 이름만 차용한 관광상품에 불과하다.
강원도 고성군은 앞으로 명태축제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명태 실종의 역사적 맥락과 어민 삶의 문화화, 어로요, 노동요, 구술 아카이브 등 전승기반 프로그램 확대, 고령세대와 주민이 주도하는 축제 설계, ‘기억의 장소’로서 축제장 재구성
축제는 구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
지역축제가 살아있으려면, 그 지역의 고유한 기억과 욕망을 담아야 한다.
“먹고, 보고, 듣고, 사진 찍고 돌아가는 축제”는 흔하다. 그러나 사라진 명태를 이야기하고, 그 삶을 기억하고, 문화로 전승하는 축제는 단 하나다.
고성명태축제가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단, 지금부터 달라진다면.
(조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