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척을 한 거야 임마.”

최근 한 드라마에서 임원이 승진을 노리는 직원에게 던진 이 대사는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12일 홍천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홍천군의회 2025년 행정사무감사 첫날, 이 대사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 행정의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기획감사실을 상대로 질의를 이어가던 용준순 의원은 “소고기 홍보를 불교방송에 비용을 주면서 하는 것이 적합한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홍천군 홍보행정 전반을 향한 구조적 비판을 쏟아냈다.

행사 홍보비, 문화재단·홍보실 중복 집행…“예산 조정 기능 실종”

용 의원은 “각종 행사 홍보비가 이미 문화재단 등의 교부금에 반영되어 있음에도 홍보실에서도 별도로 집행하고 있다”며 중복 지출 가능성을 지적했다.

홍보예산이 부서별로 흩어지면서 어디서, 어떤 행사에, 얼마가 집행됐는지 총괄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교방송에 소고기 홍보를 집행한 사례는 매체와 홍보 목적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지적됐다.

매체 선정 기준 ‘부재’…“매체력도 모르고 예산 집행하는 행정”

용 의원은 “홍보비를 지급하는 언론사를 선정할 때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홍천군은 실제로 매체 신뢰도, 독자 및 시청자 특성, 지역사회 도달률, 보도 영향력 등의 기본 지표조차 분석하지 않은 채 예산을 배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홍보를 하려면 최소한 ‘누구에게 전달되는가’ 정도는 알아야 한다”며 “홍보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집행은 결국 예산 소진 중심의 관행 행정”이라고 말했다.

외주 제작 유튜브 콘텐츠…“청년세대 반응도 없고 기획도 없다”

홍천군이 외부 제작사에 맡겨 제작하는 영상 홍보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용 의원은 “군청 홍보 영상이 군정의 필요나 주민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감사에서 질의중인 용준순의원


현재 제작되는 영상은 기획 의도 불분명, 청년층 무관심, 지역 정책과 연계성 부족, 획일적 구성과 기획력 부족 등의 문제가 확인됐다.

올해 영상 콘텐츠 대부분이 조회수 저조, 반응 미흡이라는 점도 비판 근거로 제시됐다.

“모든 공무원이 전문가일 수 없다…그러나 미디어 영역만 유독 폐쇄적”

용 의원은 구조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덧붙였다.

“모든 공무원이 모든 직종에 전문가일 수 없다. 그래서 각종 위원회 제도를 두고 민과 관이 협력한다.

그러나 유독 미디어 활용 영역은 공무원과 용역사가 밀착해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 현실이다.”

즉, 다른 정책 분야에서는 민간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구조가 제도화되어 있지만,

홍보·미디어 분야만큼은 폐쇄적 행정이 지속되며 효과 검증 없이 예산이 반복 소진되는 악순환이 고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천만의 문제 아니다…전국 지자체 홍보행정의 ‘고질병’

홍천에서 드러난 문제는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공통적으로 겪는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1) 홍보비 중복지출

부서별 축제·문화·농업·정책 홍보가 중복 편성되어 예산 누수 위험이 크다.

2) 홍보효과 데이터 부재

대부분 지자체는 여전히 ‘보도자료 배포 건수’로 성과를 판단한다.

시민 도달률, 연령별 반응, 지역 확산력 등은 분석조차 되지 않는다.

3) 홍보 담당 공무원의 비전문성

미디어·콘텐츠 기획 교육 없이 실무에 투입되며 예산 집행 중심의 관행이 반복된다.


결국 홍천군의회에서 나온 지적은 지자체 홍보행정의 전문화·투명화·데이터 기반 전환이라는 전국적 과제를 상징한다.

행정감사 첫날부터 집중 질타…제도 개선 이어질까

홍천군의회는 7일간의 감사를 통해 홍보행정을 포함한 예산 운용 전반을 정밀 점검할 계획이다.

첫날부터 드러난 문제들을 바탕으로 예산 통합 관리 체계 구축, 매체 선정 기준 수립, 홍보효과 분석 데이터 축적, 영상 제작 기획 체계 개선 등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홍보행정이 ‘일하는 척’이 아니라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전략적 행정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홍천군의회 행정감사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조지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