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정치의 현장에서 드러난 구조
홍천군의회가 9일간 진행한 행정사무감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행정이 ‘주민’이 아니라 ‘업무’와 ‘절차’만을 중심에 두는 구조적 문제였다. 민원 처리, 개발 허가, 갈등 조정 등 주민과 가장 가까운 접점에서 이뤄지는 행정 기능이 실질적인 소통과 협력보다는 ‘문서 처리’와 ‘일정 소화’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방정치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현장이라면, 행정이 주민을 향해 열려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지방의회 감사이며, 이번 감사는 그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의원들의 질문은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왜 행정의 논리가 주민의 논리를 압도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김광수 의원은 태양광·골프장·채석단지 등 대규모 개발에서 주민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를 “행정이 주민에게 성실히 설명하지 않고, 절차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용준순 의원 역시 화전리 채석단지 사례에서 공청회를 생략한 채 행정편의적으로 절차를 진행한 구조를 짚어내며 “절차의 민주성과 주민 동의 과정의 생략은 결국 행정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비판했다. 민원과 행정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었다. 친절도 평가의 공정성, 반복 민원의 근본 원인, 민원 처리의 일관성 문제는 행정이 주민과의 상호작용을 ‘절차적 업무’로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Ⅰ. 반복되는 민원 갈등 — 설명 없는 행정 절차의 민낯
1일차 감사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반복되는 민원 갈등의 구조적 원인이었다.
홍천군의회 의원들은 민원 처리 현실을 하나의 공통된 문제로 지적했다. 민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행정은 민원 증가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반복 민원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 개선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광수 의원은 “민원이 늘어난다는 건 주민이 행정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하며, 태양광·골프장·채석단지 등 민원이 집중되는 사업의 본질을 “사전 설명 부족, 소통 부재”로 규정했다.
이광재 의원 역시 농지 전용, 외지 자본 진입 과정에서 주민과 행정의 인식 간극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민원 증가가 아니라 행정 절차가 주민에게 설명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친절도 평가 지표 역시 주민 의견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경화 의원은 채점 방식의 불투명성과 등급 분포의 편중 문제를 지적하며 “주민 의견을 실질적으로 수렴하는 제도가 아닌, 형식적 평가에 그친다”고 말했다.
민원은 ‘사건’이 아니라 ‘신호’다. 그 신호를 분석하지 못하는 행정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생산한다. 민원을 처리하는 행정이 주민을 이해하는 구조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지방행정은 시민에게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답변을 듣고 있는 이광재 홍천군 의원
Ⅱ. 개발 행위와 공공 갈등 — ‘행정편의적 절차’의 구조
이번 감사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또 하나의 구조는 개발 행위에서 나타나는 행정 편의주의였다.
용준순 의원이 지적한 화전리 채석단지 공청회 생략 문제는 대표적인 사례다. 행정은 공청회를 ‘절차 요건’이 아닌 ‘선택 사항’으로 간주하며 설명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고, 결국 주민은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한 채 갈등이 심화되는 구조에 놓여 있었다.
김광수 의원은 태양광·채석단지·골프장 등 대규모 개발 현장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과 함께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사후 조치 중심으로 대응하는 근본적 한계”를 강조했다.
이광재 의원 역시 외지사업자와의 갈등 사례를 들며 “지역 현실과 주민 감각을 모른 채 추진되는 행정 판단”이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방행정이 개발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주민의 이해 가능성과 동의 절차이다. 그러나 현재 구조는 ‘사업자–행정–주민’이 아닌, ‘행정–사업자’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지방행정이 민주적 절차를 수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Ⅲ. 행정 절차와 소통의 붕괴 — 지방정치가 마주한 민주성의 한계
행정은 민원을 ‘처리해야 할 일’로 이해하고, 의원들은 민원을 ‘주민이 행정에 보내는 신호’로 이해한다. 이 차이가 반복되면서 행정과 주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민원 대응이 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닌, 행정력 소모의 창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민원 절차, 개발 승인 절차, 공청회 절차 등 주민 참여의 핵심 제도들이 형식화되면서 지방정치의 민주성 자체가 약화하는 양상도 드러났다.
이는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다.
지방정치는 주민 삶의 가장 가까운 정치이며, 주민 참여와 행정 설명의 절차가 투명하게 작동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질화된다. 이번 감사는 이러한 절차가 홍천에서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 신호였다.
Ⅳ. 지방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 의회의 질문이 던지는 의미
이번 행정사무감사에서 의원들은 단순히 집행부의 실수를 지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행정이 ‘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방정치가 발전할 수 없으며, 행정 민주성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보냈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지방행정의 체질 개선을 촉구하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와 달리 주민의 일상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민원 처리 방식, 개발사업 설명 구조, 공청회 운영 방식, 행정 절차의 투명성은 모두 주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결정한다.
Ⅴ. 맺음말 — ‘일의 절차’가 아닌 ‘주민의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홍천군의회 2025년 행정사무감사 1일차는 단순한 문제 지적이 아니라, 지방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행정이 업무의 효율성과 절차만을 기준으로 움직일 때 주민의 삶은 그 과정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지방정치는 주민의 삶을 기반으로 성립하며, 절차 민주주의가 일상의 영역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홍천군의회가 던진 질문은 단 하나였다.
“홍천군 행정은 주민의 삶과 함께 가고 있는가?”
2편에서는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의 원인과 제도적 한계를 분석하고, 주민 중심 행정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제를 탐색할 예정이다.
(조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