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적 팽창에 갇힌 지역축제… 재정 위기 속 '예산 역행'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축제를 부활시키면서, 지역 재정에 구조적 불균형을 야기하고 있다. 정부가 건전재정을 주문하며 지방교부세를 삭감하는 상황에서도, 축제 예산만큼은 매년 폭증하는 *"역행 현상'"이 뚜렷하다.
서울경제신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43개 지자체가 집행한 축제 예산은 1조 6,423억 원(1,129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1.5% 증가한 수치로, 축제 예산이 매년 10% 가까이 늘어나는 추세가 고착화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정자립도 최하위 지자체들의 예산 집행 행태다. 울릉군(재정자립도 2.67%), 완도군(6.17%), 강진군(7.60%), 보은군(10.4%) 등 재정자립도가 10% 내외에 불과한 지자체들이 매년 7개에서 11개에 달하는 축제를 개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국비 의존형 재정 구조임에도 행사성 경비를 과다 편성하며 빚으로 여는 축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 '명태 없는 축제'의 모순… 본질과 정체성 실종
축제 난립은 단순히 재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축제의 본질과 정체성을 훼손한다. 강원도 고성군의 명태축제는 이 구조적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이상 명태가 잡히지 않는 고성 거진항에서는 25년째 명태 없는 명태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는 명태할복체험, 명태키링 만들기 등 200여 개의 소비형 이벤트 부스로 채워졌지만, 명태잡이 문화와 어민들의 삶에 대한 지역의 문화와 기억은 단발성 이벤트로 소외됐다. 무형문화재인 "고성 어로요"는 한 차례 공연으로 끝났고, 명태요리 체험은 지역 어민이 아닌 외지인 중심으로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정체성 없는 축제'가 낳는 구조적 단절로 진단한다. 축제의 본질인 기원, 신명, 전복의 요소는 사라지고, 주제를 벗어난 단순 공연 중심의 소비형 관광상품으로 전락했다. 한 전문가는 "단 몇 분을 위한 가수 무대에 예산의 30% 이상을 소모하는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3. '0명'의 외국인 방문객, 실패한 외생적 성장 전략
지역축제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지자체의 항변은 데이터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공정미디어뉴스 분석 결과, 축제를 가장 많이 개최하는 상위 기초단체들의 외국인 방문객 수는 대부분 '0명'에 수렴한다. 한국의 지역축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매우 저조하며, 세계화에 성공한 축제는 극히 제한적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활동은 쇼핑, 식도락 관광 등에 집중될 뿐, 축제 참가는 관심도 순위에서 매우 낮게 나타난다.
이는 축제가 외부 관광객 유치라는 '외생적 성장 전략'에 의존하면서도, 지역 고유의 독창적인 콘텐츠(IP)와 체류형 프로그램을 확보하는 '강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4. 평가 시스템 부재와 '행정의 논리'에 갇힌 축제
지역축제의 구조적 병폐는 결국 '시민의 문화'가 아닌 '행정의 논리'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지자체는 오직 '방문객 수'라는 숫자를 근거로 축제의 성공을 자평하지만, 축제 품질, 성과, 지속성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부재하다. 관 주도 축제는 공무원 순환보직으로 연속성과 전문성이 저해되며, 매년 '예산-행정-성과보고서'의 고리만 반복한다. 충북경제포럼 분석에서도 도내 축제의 64%가 관광객 유치 등 외부효과 중심으로 기획될 뿐, 양자 통합형 축제는 13%에 불과했다.
이러한 평가와 정체성의 부재 속에서 축제는 '정체성(正體性) 없는 정체(停滯) 상태'에 머무르며, 그 피로감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5. 대안: 예산보다 구조의 혁신을 통해 시민을 주인으로
지방소멸 시대, 축제가 지역을 지탱하는 장치가 되기 위해서는 예산 증액이 아닌 구조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첫째, 시민참여형 기획제를 도입하여 소재 공모전, 주민 기획단, 자원봉사단 중심의 운영을 통해 지역민의 주체성을 복원해야 한다. 둘째, 관객 수가 아닌, 축제의 품질, 성과, 지속성을 평가하는 질적 평가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셋째, 명태 실종의 역사적 맥락 등 지역 고유의 서사를 중심으로 축제의 정체성을 복원해야 한다.
진정한 축제는 공무원의 기획서가 아니라, 시민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다. 숫자로 포장된 흥행보다, 시민이 주인 되는 한 번의 진짜 축제를 만들 때, 축제는 지방소멸 시대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