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김혜란기자) 2025.12.24.
3,370만 명에 달하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는 가운데, 유통업계 노동자들이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으로 '왜곡된 유통산업 구조'를 지목하고 나섰다.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이하 노조)은 23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정보 관리 실패가 아닌, 독점적 유통 구조와 낡은 규제가 만들어낸 예견된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돈 벌 땐 한국 기업, 책임질 땐 외국 기업?"
노조는 우선 쿠팡의 이중적인 태도를 문제 삼았다. 노조는 "쿠팡이 매출을 올릴 때는 국내 기업으로서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면서, 막상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서는 외국계 기업(미국 모회사)이라는 이유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며 "소비자와 입법부를 대하는 태도에서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 규제의 역설... 대형마트 '쪼그라들 때' 온라인은 '폭주'
노조는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2011년부터 13년 넘게 지속된 오프라인 유통 규제를 지목했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 아래 대형마트의 손발을 묶는 사이,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온라인 플랫폼이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노조가 인용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2025년 10월 기준)에 따르면, 전체 유통산업 매출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5%로 추락한 반면, 온라인 유통은 52%로 과반을 넘어섰다. 특히 2024년 쿠팡의 단독 매출은 약 36조 원을 기록해,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매출 합계인 25조 원을 10조 원 이상 앞질렀다.
노조 관계자는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쿠팡 외에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는 독점적 상황"이라며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기업은 보안 투자나 사회적 책임보다 이윤 추구에 몰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일자리 1만 개 증발"... 생존 위기 내몰린 유통 노동자
기울어진 운동장은 고용 위기로 이어졌다. 노조는 대형마트 폐점이 잇따르며 최근 약 1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밝혔다. 최근 홈플러스가 겪고 있는 임금 분할 지급과 세금 체납 사태 역시 이러한 유통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경고등'이라는 해석이다.
◇ "감정적 '쿠팡 죽이기' 반대... 공정한 룰 세워야"
다만 노조는 쿠팡에 대한 영업정지 등 극단적인 제재에는 신중론을 폈다. 쿠팡 입점 판매자의 75%가 중소상공인인 상황에서, 무리한 제재가 자칫 영세 상인들의 피해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공정한 경쟁 질서 확립'을 촉구했다. 노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외국계와 국내 기업이 동일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만약 대형마트 규제를 유지하려거든, 정부·기업·노동자가 참여하는 '산업전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유통 노동자의 출구 전략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